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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 향기에 취했던 어린 시절 Best
작성자 : 황금어장식품
작성일자 : 2008-07-10 09:00:00 조회 : 4444
                                      풀빵 향기에 취했던 어린 시절

2007년 12월 12일(수) 오전 10:00
 
▲ CNB뉴스,CNBNEWS ,씨앤비뉴스 - ‘니 시장에 가서 팥 좀 사온나.’
‘팥이 뭔데요?’
‘이 빵에 들어가는 앙코가 바로 팥 아이가. 시장에 가서 100원어치만 사오너라.’
‘그냥 시장에 가서 파를 달라고 하면 되지예?’
‘하모. 시장통에 가서 팥을 파는 아줌마한테서 사면 된다.’
'알았어예.‘
아이는 풀빵 파는 아줌마한테서 100원을 받아 들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그리고 의문점을 가지면서 시장으로 향했다.

‘풀빵 안에 앙코가 들어가야 되는데, 왜 파를 넣지? 이상하다. 파가 앙코로 변한단 말이가.’
아이는 그런 의문점을 가지면서 시장에 갔다. 그리고는 파와 감자, 양파를 파는 아줌마에게 가서 굵은 대파 100원어치를 사게 된다. 가슴 한 구석에는 풀빵 아줌마가 시킨 심부름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가득 안고서.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아이는 아줌마에게 자랑스레 대파를 내밀었다. 대파는 꽤나 묵직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이렇게 묵직한 파를 사왔으니 심부름 값으로 풀빵 하나 달라는 요구가 순진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본 아줌마는 곤혹스러운 미소를 짓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종내에는 굵고 투박한 웃음을 풀풀 날리면서 이야기했다.

‘아이고, 야야. 팥을 사오라고 했지 누가 파를 사오라고 했나?’
‘이게 팥 아인교?’
‘아이다. 팥이라고 따로 있다. 내가 잘못했다. 이제 겨우 여덟 살 짜리가 무얼 알끼고. 옛다. 수고했다. 이 풀빵이나 하나 먹어라.’
순간, 아이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그래도 저 풀빵은 맛있겠는 걸. 주시는 거니까 얼른 받아야지. 여덟 살 아이는 아줌마가 내민 풀빵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석양이 길게 꼬리를 끌며 서녘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그 석양에서 비어져 나온 노란 빛이 풀빵 위에 살짝 묻어 있었다.

참, 아련한 추억이다. 벌써 36년 전의 아득한 추억이다. 그때, 나는 동네 한 구석에 있는 풀빵 장수에게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아마, 그 시절에 유난히도 풀빵이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마땅히 놀러갈 곳도 없어 괜스리 풀빵 장수에게 가서 하루 종일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어머니와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참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갓 이사를 온 아이는 마땅히 갈 데가 없어 풀빵 장수에게 놀러 갔던 것이다.

국화빵 혹은 거지빵이라고도 불렸던 풀빵.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틀 기계 안에 붓고, 그 안에 팥을 넣어 구워낸 풀빵.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서민들의 입맛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그 풀빵은 아직도 이 땅의 민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붕어빵이다 잉어빵이다 뭐다 해서 종류도 다양해 졌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국화빵뿐이었다.

일각에선 이 국화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단다. 이유는 국화가 일본의 국화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빵이 없었다. 한민족은 주로 떡을 해 먹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이 땅에 밀가루 빵을 퍼트렸던 것이다. 국화빵은 일본의 국화를 은밀하게 퍼트린 장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붕어빵이 있다면 일본에는 도미빵이 있다고 한다. 도미처럼 생긴 풀빵인 모양인데, 이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붕어로 변신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오게 되었단다. 이제는 붕어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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